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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다 지친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
- 차승민 저
- 아몬드
- 2026년 0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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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2465326 |
|---|---|
| 쪽수 | 224쪽 |
| 크기 | B6(127mm X 188mm, 사륙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경제/자기계발 > 처세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괴로운 당신을 위한 19년차 정신과 의사의 관계 안내서
19년째 진료실을 지켜온 정신과 의사 차승민이 그 답을 찾아 나섰다. 국립법무병원에서 5년간 230여 건의 형사정신감정을 진행하며 사람의 가장 어두운 마음까지 들여다봤던 저자가, 이번엔 시선을 우리 모두의 일상(회사의 그 선배, 가족, 연인)으로 옮겼다.
이 책은 실존 인물을 진단하지 않는다. 대신 〈미생〉 성 대리, 〈슬램덩크〉 강백호, 〈눈물의 여왕〉 홍해인처럼 익숙한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자기애성·경계성·의존성 성격장애부터 우울증, 중독, 애착 유형까지 13가지 마음을 풀어낸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 때문에 지쳤다면 이 책이 그 관계를 다시 보는 첫 단추가 되어줄 것이다.
[목 차]
프롤로그 - 이유를 아는 일이 중요한 이유
1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01 내 옆자리의 성 대리 - 자기애성 성격장애
02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 - 연극성 성격장애
03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 - 의존성 성격장애
04 흑과 백 사이에서 - 경계성 성격장애
05 완벽한 부모라는 착각 - 강박성 성격장애
2부 아픈 마음들
06 애쓰는데 왜 안 될까 - ADHD
07 우울감이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 - 우울증
08 채워지지 않는 마음 - 중독
3부 숨은 마음들
09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 투사적 동일시
10 마음속 소년이 자라지 못할 때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11 죽은 형의 그림자 - 형제자매간의 경쟁
12 우리는 모두 죽음을 연습한다 - 타나토스
13 사랑이 불안한 당신에게 - 애착 유형과 사랑
에필로그 - 정신의학,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
[본 문]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념들을 다룬다. 성격장애와 애착 유형, 우울증과 중독, 타나토스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까지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여러 영역을 넘나든다. 의존성이 강한 사람은 왜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가.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왜 관계에서 극단적으로 반응하는가. 우울증은 어떤 얼굴로 찾아오는가.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왜 사랑을 어려워하는가. 이 책은 그런 질문들을 대중문화 속 인물과 실제 사례를 통해 함께 들여다본다. (9~10쪽)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는 일은 결코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유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더 현명하게 판단하고 단단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를 알면 그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알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나를 이해하는 일은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10~11쪽)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 타인을 착취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발달한 것이다. 당하는 쪽이 몰랐거나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다. 이들은 타인의 선의와 감수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쉽게 표적이 된다. (28~29쪽)
겉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속이 비어 있을 때, 내 에너지로 그 빈속을 채워주려 하는 것은 너무 소모적인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한 번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차분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43쪽)
드라마 속 노다메와 강백호도 마찬가지였다. 치아키와 안 감독처럼 자신의 생활을 챙겨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재능을 빛내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역할을 조력자 캐릭터로 표현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L이 실천한 것처럼 일과표 작성, 체크리스트 활용, 인지행동치료 등 스스로 삶을 조절하는 전략을 찾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에게 맞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ADHD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106~107쪽)
드라마 속 선아의 모습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여준다. 우울증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을 것이다. 앤드루 솔로몬의 책 《한낮의 우울》은 작가가 평생 우울증을 앓으며 겪어온 일들을 매우 세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작가는 침대에 꼼짝없이 누운 채 샤워하기가 두려워서, 그러나 샤워는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울었다고 회상한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 이것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116쪽)
투사적 동일시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충동을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심어놓아, 상대방이 그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를 하는 사람은, 그 감정이 너무 부정적이고 불편하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마치 상대방에게 있는 것처럼 믿어버린다. 내가 가지기에 괴로우니 떠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투사된 그 감정을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된다. (150쪽)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한결같으냐’다. (175쪽)
심리학적으로 보면 설렘과 불안의 신체 반응은 매우 비슷하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우리는 이것을 어떤 맥락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 설렘이라 부르기도 하고 불안이라 부르기도 한다. (207쪽)
내가 불안형인지, 회피형인지를 아는 것은 단순한 심리 테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왜 나는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가, 왜 나는 자꾸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에 대한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애착 유형이 평생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떠나지 않는다는 경험,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경험이 쌓일 때 사람은 조금씩 달라진다. (218쪽)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장)
나는 해마다 백 명이 넘는 말없는 몸을 마주한다. 부검대 위에서 내가 던지는 질문은 늘 하나다. 왜 이 사람은 여기까지 왔는가. 차승민 선생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 그 행동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성 대리와 라스타, 구 씨와 송태섭을 지나 진료실의 이름 없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끝내 진단명을 붙이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지 않으려는 그 조심스러움이 나는 못내 미더웠다. 몸이 거짓말하지 않듯 마음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읽지 못했을 뿐이다. 제때 이해받지 못한 아픔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터진다는 저자의 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오진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유튜브 〈닥터프렌즈〉 운영자)
정신과 의사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가족이나 친구가 “저 인물은 왜 저래?”라고 물으면, 편하게 시청자로 있던 저는 어느새 정신과 의사 모드로 전환되어 분석을 시작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캐릭터들을 분석하며 지내왔는데, 이 책을 읽고 솔직히 질투가 났습니다. 제가 짧게 스케치하던 것을 책으로 깊고 단단하게 완성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사람을 평가한다는 느낌보다 이해하려는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질문은 드라마 속 인물을 지나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로 향합니다. 판단의 언어가 아닌 이해의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그 질문 하나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고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몸이 거짓말하지 않듯 마음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읽지 못했을 뿐이다”
- 유성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장
인간관계가 어려워질 때 보통 가장 먼저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을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아닐까. 갈등이 생기면 대화를 시도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때로는 내가 먼저 사과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애쓸수록 더 지치는 관계가 있다. 상대가 화를 내면 내가 잘못했나 싶고, 상대가 나를 밀어내면 내가 부족한가 싶고, 상대가 나를 통제하면 그만큼 나를 걱정해서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질문에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왜 이 관계는 나아지지 않는 걸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차승민의 신간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아몬드 刊)』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2008년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해 2012년 전문의가 되었고, 19년째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에서 5년간 230여 건의 형사정신감정을 진행하며 범법 정신질환자들을 진료했던 그는, 그 경험을 담은 전작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과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엔 시선을 진료실 밖, 우리 모두의 일상으로 옮겼다. 부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다 지친 당신을 위한 관계의 심리학’이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를 알면 그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알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나를 이해하는 일은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11쪽
정신과 의사라는 이유로 “저 사람은 어떤 사람 같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원칙이었다. 그럼에도 질문 속 궁금증만큼은 외면하기 어려웠다. 왜 어떤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끊임없이 상대를 밀어내는지, 왜 어떤 사람은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무너지는지,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해놓고 오히려 상대에게 화를 내는지.
그래서 저자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웹툰과 웹소설 속 허구의 인물을 골랐다. 작가가 빚어낸 캐릭터는 진단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해석의 대상으로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다. 게다가 이들은 현실에서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드러날 인간의 내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장되어 있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고, 그 선명함 덕분에 정신의학적 개념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당신이 예민한 게 아니다
왜 가해자보나 먼저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가
1장에서 다루는 〈미생〉의 성 대리가 그 첫 사례다. 성 대리는 처음부터 불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교적이고 자신감 있으며 윗사람에게는 싹싹하고 유능하다. 그러나 자신보다 약한 후배 한석율에게는 폭언과 모욕을 일삼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다. 저자는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약한 위치의 사람에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고 짚는다.
성 대리를 다른 자리에서 본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유능하고 좋은 동료다. 그러니 피해를 호소해도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이 먼저 돌아온다. 가해자의 이중성이 목격자 부재를 만들고, 그 부재가 피해자의 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 대리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일까? 저자는 진단명을 붙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구조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아니라 먼저 스스로를 탓하고 의심하게 되는지 이유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느 직장에나, 어느 사회에나 성 대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힘들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 탓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29쪽
이해한다고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조언 대신 건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침
사람을 이해하라는 말은 따뜻한 조언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해’가 곧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선을 긋는다. 연극성 성격장애를 다루는 2장에서는,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반복하며 주변을 감정적으로 소모시키는 관계가 곁의 사람에게도 큰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짚는다. 이런 경우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때로 ‘곁에 있지 않는 것’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성격은 성인이 된 이후 바꾸기 쉽지 않기에, 상대를 내가 바꿔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또 다른 소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이 조언이 흔한 ‘손절하라’는 말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무조건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대신, 왜 이 관계에서만 유독 내가 지치는지 그 이유를 먼저 알아야 거리 두기가 죄책감이 아니라 판단이 될 수 있다고 짚는다.
3장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에 등장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똘마니도 비슷한 역설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판단 없이 보스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다가, 보스가 바뀌면 곧바로 새로운 보스를 따른다. 저자는 이를 의존성 성격장애의 전형으로 설명하며,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따르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와 함께 악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고 짚는다. 여기서 독자가 얻는 것은 단순한 유형 구분이 아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해주는 것은 다르고,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과 그 관계가 건강하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관계일수록 오히려 내가 그 관계를 떠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의존성이 위험한 진짜 이유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
가족이니까, 연인이니까 넘어갔던 것들의 진짜 정체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고, 연인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탓이다. 4장 ‘흑과 백 사이에서’는 〈재혼황후〉의 라스타와 〈달의 연인〉의 왕소를 통해 경계성 성격장애를 설명한다. 이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으로 이상화하다가도,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 최악의 사람이라며 돌아선다. 흑과 백만 있고 회색은 없는 것이다. 감정의 진폭이 커질수록 곁에 있는 사람도 늘 긴장하게 된다.
5장 ‘완벽한 부모라는 착각’은 이 문제를 더 조용한 얼굴로 보여준다. 일본 드라마 〈나기의 휴식〉의 주인공 나기는 직장에서도 연애에서도 늘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을 억누르는 인물이다. 그런 나기가 유독 어머니 앞에서만 예전의 억눌린 자신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홀로 딸을 키운 어머니는 늘 성과를 강조하며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을 나기가 따르기를 요구했고, 나기는 반항하지 않는 착한 딸의 정체성을 그대로 안은 채 어른이 됐다. 〈SKY 캐슬〉 차민혁의 강압적인 자녀 교육, 실제 사례 E가 남편에게서 겪은 통제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진다.
4장과 5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라스타와 왕소의 극단적인 이상화-평가절하도, 나기 어머니와 차민혁의 집요한 통제도, 출발점은 같다. 버려지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자는 차민혁도, 나기의 어머니도, E의 남편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최선이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만 정의되어 있었고, 그 기준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사람일수록 실은 자신이 가장 두려움에 쫓기고 있다는 점, 이 역설을 알면 그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답답함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순간
우울과 중독은 그저 성격 탓이 아니다
1부가 곁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성격 유형을 다룬다면, 2부 ‘아픈 마음들’은 방향을 바꿔 당사자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를 들여다본다. 7장 ‘우울감이 당신에게 보내는 신호’에서 저자는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의 배석류와 〈우리들의 블루스〉의 선아를 통해 우울증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암 투병 끝에 우울증을 얻은 배석류 곁에서 처음엔 최선을 다하던 약혼자가 서서히 지쳐가는 과정, 아침에 혼자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던 선아의 하루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울증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짚으며, 그냥 참는다고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8장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중독을 다룬다. 〈나의 해방일지〉의 구 씨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은 둘 다 삶이 허무한 채 술이 거의 유일한 일과인 인물들이다. 저자는 드라마와 영화 속 이들의 음주가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낭만적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알코올 사용장애, 즉 중독으로 진단할 수 있는 상태라고 짚는다. 판단 기준은 하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느냐"는 것.
이 두 장이 나란히 하는 말은, 우리가 매력적인 캐릭터에게 자주 속는다는 것이다. 상처를 안고 무너지는 인물은 드라마 속에서 흔히 쓸쓸하고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만, 그 상태에 낭만을 느끼는 순간 정작 필요한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저자가 굳이 진단명을 정확히 짚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쓰럽게 여기는 것과 아픈 사람으로 알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
‘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서 ‘나는 왜 이렇게 반응하는가’로
이 책의 후반부가 중요한 이유는 질문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1부와 2부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했다면, 3부 ‘숨은 마음들’은 그 패턴이 애초에 왜 반복되는지 무의식의 뿌리까지 파고든다. 9장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부부 박동훈과 강윤희를 통해 그 과정을 보여준다. 강윤희는 자신이 외롭고 공허하다는 감정을 남편에게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대신 ‘무심한 남편’이라는 이미지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심어놓았다. 박동훈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와 동일시하고, 정말로 아내를 외롭게 한 남편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모른 척한 것 역시 자신이 부족했던 탓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투사적 동일시’라 부른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놓고, 상대가 그 감정을 마치 원래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여 행동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 개념이 섬뜩한 이유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나쁜 일이 늘 상대의 의도에서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동훈은 나쁜 남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는 아내가 심어놓은 감정을 성실하게 받아 안았을 뿐이다.
11장은 이 뿌리 찾기를 형제자매 관계로 넓힌다. 〈눈물의 여왕〉 홍해인의 이야기로 형제자매간의 경쟁을 설명한 뒤, 곧바로 지극히 평범한 K의 사례로 넘어간다. 배움이 빠르고 성적도 외모도 뛰어난 형 밑에서 자란 K는 반에서 일등을 해도 전교 일등인 형과 비교당하며 자랐다. 문제는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들어가고도 이유 모를 무기력과 불면에 시달리던 K는 결국 정신과를 찾았고, 상담 끝에 의사가 짚어준 것은 이랬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K는 평생 형과 경쟁하고 있었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강윤희와 박동훈이 서로에게 감정을 떠넘기는 이야기였다면, K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자기 삶의 방향타를 남과의 비교에게 통째로 내준 이야기다.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나 자신과의 관계 문제였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두 장은 나란히 보여준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와 나에게 좋은 관계 구별하기
사람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그 행동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유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고, 상대의 행동을 모두 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관계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성 대리와 똘마니, 라스타와 나기의 어머니, 박동훈과 K를 지나오면서 이 책이 하는 일은 사실 하나다.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저 사람 성격 탓’이나 ‘내 탓’이라는 두 갈래 중 하나로 몰아넣지 않고, 그 사이에 있는 훨씬 넓은 지대(패턴, 두려움, 무의식적으로 주고받는 감정) 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다.
이 책은 상대를 무조건 이해하라고도, 모든 관계를 끊어내라고도 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서는 더 이해해야 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분명한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결국 좋은 관계란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관계와 나를 소진시키는 관계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실제 인물이 아닌 드라마 속 허구의 인물을 다룬 것도, 그리고 그 인물들에게 진단을 내리는 대신 행동의 이유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택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 있다. 정신의학적 시선은 사람을 분류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하는 도구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22쪽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괴로웠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그 관계를 조금 더 정확히 바라보기 위한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는 결국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아몬드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에서 5년간 감정과장 및 사회정신과장으로 근무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낙인을 허물고자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를 집필했다. 진료실 밖에서는 오래전부터 드라마와 대중문화 애호가로 지내왔으며, 작품 속 인물들의 행동과 관계를 정신의학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을 즐겨왔다. 그 오랜 관심과 풍부한 임상 경험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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